2009 U-20 월드컵을 기점으로 닻을 올린 홍명보호가 대단원의 막을 내릴 런던행 항해만을 남겨두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수없이 거쳐간 선수들, 그렇기에 선수 선발보다 제외가 더 힘들었다던 홍명보 감독. 허락된 선원의 자리가 고작 18개였던 지라 포지션 곳곳마다 고심의 흔적이 선명했고, 항해에 참여하는 선원들의 수가 적었던 만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들이 각광을 받았다.
이번 글에서는 누군 왜 뽑혔고, 누군 왜 안 뽑혔는지에 대한 판단은 접어두었다. 대신 선장의 선택을 받은 선원들로 어떤 조합이 가능한지, 그래서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올림픽 메달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지를 그려보고자 했다. 그동안 홍명보 감독이 줄기차게 활용해왔던 4-2-3-1 시스템에 맞춰서 말이다.
1. 공격진 [박주영, 김현성, 지동원, 김보경, 백성동, 남태희]
공격진의 명단을 확인하자마자, 머릿속 시계는 1년 반 전, 2010년 11월에 열렸던 광저우 아시안 게임으로 돌아갔다. 박주영 원톱에 지동원이 그 밑을 받치는, 여기에 김보경까지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가세해 재미를 보았던 이른바 '광저우 커넥션'을 이번에도 적극 활용하겠다는 홍명보 감독의 의도가 진하게 묻어났다. 당시의 조합을 1년 반 뒤인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꺼내든 이유? 그동안 적지 않은 공격 조합이 대표팀을 거쳐갔지만 그 중 홍명보 감독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았던 매력적인 조합은 없었다는 의미 아닐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갔던 선수는 남태희. 그동안 이 위치엔 서정진, 김태환이 중용됐거늘, 그들의 플레이가 확신을 심어주기엔 아무래도 임펙트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남태희가 홍명보호와의 인연이 깊었던 것도 아니다. 성인 대표팀의 부름은 받았을지라도 홍명보 감독의 입맛에 맞는지의 여부에 대해 증명해 보일 기회는 많지 않았던 터라 의외의 선택으로 비치기도 했다. 일단은 백성동을 오른쪽 측면에 배치할 수 있으니, 한 달 간 조직력 담금질에 엄청난 양의 땀을 흘려 남태희 카드의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길 기대한다.
김현성 카드도 눈길을 끌었다. 한 끼 식사에서 먹는 양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여건만 된다면 3첩보다는 9첩 반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중볼 장악이 특기인 김현성의 선발은 옵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메리트를 지닌다. 김현성이 떨구고, 쉐도우 김보경이 쇄도해 처리했던 사우디전의 골은 상대팀을 무너뜨릴 또 하나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 베스트일레븐
2. 허리진 [기성용, 구자철, 박종우, 한국영]
이견이 없다. 상당히 탄탄한 구성이다. 그동안 롱런했던 윤빛가람이 마지막 문턱에서 좌절한 것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선수들의 선발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동안 주장 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구자철의 존재감은 대단하며, 기성용의 클래스는 성인 대표팀에서도 검증됐다. 그리고 박종우, 한국영도 홍명보 감독의 눈에 들 만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젠 이 자원을 갖고 어떤 조합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성용을 한 축으로 삼는다면 딥라잉 플라잉메이커, 즉 뒤에서 경기 조율 임무를 맡김으로써 현재 유로 2012를 아그작아그작 씹어먹고 있는 피를로와 같은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이 선수가 셀틱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수비적 능력치도 상당히 상승했기에 파트너로 기용될 구자철이나 박종우는 보다 공격적으로 활용 가능하다. 또, 미친 압박을 옵션으로 추가하고 싶다면 한국영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재료는 훌륭하다. 이젠 이 재료를 입맛에 맞게 골라 잘 요리해내기만 하면 된다.
ⓒ Osen
3. 수비진 [김영권, 장현수, 황석호 / 윤석영, 오재석, 김창수]
김영권-홍정호가 건재하던 중앙 수비라인은 홍정호의 부상으로 한쪽 날개가 완전히 꺾어버렸다. 재정비를 피할 수 없게 된 처지에 김영권의 파트너로 낙점된 카드는 2011 U-20 월드컵에서부터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준 장현수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진통을 겪었던 이정수를 대신해 황석호가 남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중앙 수비는 개인적인 능력치도 중요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조합의 궁합이다. 2002 월드컵 당시 김태영-홍명보-최진철 조합의 찰떡 궁합은 세계 탑클래스 공격진을 상대하면서도 6경기에서 3골밖에 내주지 않았는데, 마지막 터키전에서 급조된 이민성-홍명보-유상철 라인은 1경기에서만 3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당사자인 홍명보 감독이 이를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당시를 거울 삼아 쫄깃쫄깃한 궁합을 자랑할 수 있는 조합을 찾아내야만 한다.
측면 수비는 그저 놀라웠다. 최근 몇 년 동안 성인 대표팀 오른쪽 측면 수비로 끊임없이 언급됐던 후보가 바로 김창수, 그가 이번 올림픽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론 박종우, 이범영에 김창수까지, 소속팀의 베스트11 중 무려 3명을 내준 부산 안익수 감독의 용단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윤석영은 왼쪽에 한정되지만 오재석과 김창수 모두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뛸 수 있으며, 또 두 선수 모두 중앙 수비도 소화 가능하기에 여러 조합이 나올 수 있다.
4. 골키퍼 [정성룡, 이범영]
홍명보호의 특장점이라면 모든 선수의 주전화였다. 주전군과 후보군의 기량 차가 적어 어떤 선수가 나서도 큰 공백 없이 경기 치를 수 있을 정도로 팀이 건강했다. 이는 필드 플레이어에 그친 게 아니라 이범영, 하강진, 김승규가 버티고 있는 골키퍼 포지션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홍명보 감독은 두 자리 중 한 자리에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 입맛만 다셨던 와일드 카드 정성룡을 선택했고, 그러면서 하나로 줄어든 자리는 결국 이범영에게 돌아갔다. 아무리 정성룡이라 할지라도 현재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과 소화한 경기 횟수는 거의 없는지라 수비 리딩 등 호흡적인 측면을 보완해야 하며, 이범영과의 경쟁을 거듭해 보다 높은 경기력을 끌어낼 필요도 있다.
일단 홍명보호에 최종 승선한 18명의 선수엔 축하의 말을 건넨다. 탈락한 선수들에 대한 언급은 '아쉬운 선수들'이란 제목으로 따로 페이지를 할애하여 다뤄볼 요량으로 최대한 자제했다. 윤빛가람, 서정진, 김태환, 홍철, 윤일록, 김민우, 조영철 등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읊어보기로 하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달 동안 준비 잘해 좋은 결과 갖고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사골이 4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국물을 우려내고 있으니 축구도 메달 한 번 따야하지 않겠는가. 우려낸 국물, 질리고 질리도록 맛볼 준비가 되어 있으니 런던에 가서 준비한 것들 모두 쏟아내고 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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