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
<지동원 선수 부상 맞습니까?>
이 한 마디로 얌전했던 미디어데이의 분위기를 살렸던 최강희 감독이다.
어쩜 그리도 여우 같은 멘트를 잘 날리시는지. 그것도 세상을 해탈한 무표정을 짓고선.
24일 축구회관에서 열렸던 K리그 미디어데이 현장, 사회자로 나선 박문성 SBS 축구 해설위원이 전북의 최강희 감독에게 <김형범 선수가 지난 시즌 부상으로 어려웠는데 이번 개막전엔 나올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 최강희 감독은 대답 대신 상대팀 감독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전남의 정해성 감독과의 대화가 오갔다.
최강희 감독 : 답변에 앞서 정해성 감독님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지동원 선수 부상 맞습니까? 아니 오늘 처음 만났는데 표정이 너무 밝아서 혹시 언론에 그냥 흘린 게 아닌가 해서요. 저도 개막전을 준비하면서 2일 날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먼저 하기 때문에 전력이 먼저 드러나서 머리가 굉장히 아팠었는데 아무래도 언론에 흘린 게 아닌가 싶어서 오늘 꼭 확인하고 싶어서요.
정해성 감독 : 다친 건 분명합니다. 분명한데... 안 그래도 그 기사가 나가고 난 뒤에 우리 코치들하고 전북의 최강희 감독이 정말 좋아하겠다 했어요.
최강희 감독 : (말 끊고 단도직입적으로) 전북전에 출전합니까?
정해성 감독 : 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거는 좀 지나봐야 알겠는데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나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최강희 감독 : 그러면 작전이 맞는 걸로 하겠습니다. 나오는 걸로 계산하고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김형범의 출전 여부에 대한 멘트는 쏙 뺀 최강희 감독의 센스는 대단했다. 게다가 잠시 후 정해성 감독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정해성 감독님은 존경하는 선배고... 극단적인 표현으론 ㅈㄹ맞은 성격이다>라는 약 주고 병 주는 멘트를 날렸다.
두 팀 감독 간에 벌어진 사소한 대화가 어떤 효과를 갖느냐고? 아시다시피 3월 첫째주 주말에 시작하는 K리그 개막전의 최대 관심사는 지난 시즌 정규리그 챔피언 서울과 FA컵 우승팀 수원이 맞붙는 슈퍼 매치다. 이 외에 전북vs전남, 포항vs성남 등 기대되는 매치가 있지만 분명히 언론의 포커스는 서울vs수원에 집중될 것이다. 최강희 감독은 그런 대세에 맞서 전북vs전남의 호남 더비 매치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돈 안드는 홍보 제대로 한 셈이다. 당장 필자부터라도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팀의 경기와 서울vs수원의 경기에만 관심이 있다가 전북vs전남의 호남더비에도 눈길이 갔다.
ⓒ Osen.
퍼거슨 "무리뉴, 입에 단추 채워." 현 분위기상 이런 수위의 발언은 힘들다는 거 인정한다.
꼭 이러한 자극적인 도발이 아니더라도 신선함을 주기 위해 노력하자.
노력해서 안 될 게 있나. 14위의 제주가 그 다음 해에 2위까지 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런 발언을 맞받아 칠 파트너의 부재다. 최강희 감독 홀로 외롭게 분투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세상에 불 구경 다음으로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았나. 해외 축구에서 이슈 메이커의 대표격인 무링요나 퍼거슨의 경우를 보자. 그들이 입을 열어 떡밥 하나 던져주면 주위에서 가만히 있는가. 떡밥이 주어지면 반드시 물고 늘어지며 맞받아 치는 게 그들의 모습이다. 때로는 감정 싸움으로 번질지라도 그래서 하나의 스토리가 생겨나고 또 하나의 홍보가 되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해 10월 중순, 서울을 향해 <서울, PO에 약한 게 아킬레스건>이라는 최강희 감독의 발언에 서울 쪽에서의 적절한 대응이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결과적으론 서울이 우승을 하며 이 발언의 효력은 떨어졌지만 관심몰이는 제대로 한 거 아닌가.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고 했다. 외손뼉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고 맞서는 사람 없으면 싸움도 나지 않는다. 때로는 시답잖은 박명수의 개그도 유재석이 받아주면 명품 개그가 된다. 특정 개인이 아니라 다함께 한 마음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 조이뉴스24.
<최선을 다해 이번 시즌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식상한 발언은 그만하자.
너무나도 식상해 이제는 무성의하게 들리곤 한다.
감독만이 아니다. 미디어데이에 참가해 다소곳한 새색시마냥 암전한 멘트들만 남긴 선수들을 보면서 생각난 선수가 있다. 지난 2007년, 귀네슈 감독 부임 초기 <다른 팀들이 상암에 와서 비기는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다. 우리가 강 팀으로 인정받는 증거>라는 멘트에 mbc espn과의 인터뷰에서 카메라에 대놓고 <서울이 언제부터 강팀이었느냐. 감독 하나 바뀌었다고, 터키 감독 하나 왔다고 서울이 명문팀인가. 잘난 척 하다 큰 코 다칠 것이다>라고 대응한 울산의 이천수가 새삼 그리워졌다. 이 인터뷰에 대한 자세한 얘기가 언론에 보도돼 귀네슈 감독의 발언에 조금은 오해가 있었다는 게 밝혀졌지만, 기자들은 또 한 번 이천수 떡밥을 건드려 자극적인 기사를 써내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언론에 K리그 노출은 제대로 했던 사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멘트까지 싸xx 없다고, 입천수라고 깎아내릴 건 아니다. 동시대 축구 영웅으로 대접받는 박지성은 쉽게 하기 힘든 발언을 이천수는 했고 그 발언은 K리그 흥행에 조금이나마 일조했다.
<최선을 다해 이번 시즌엔 더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는 식상한 발언은 그만하자. 잠 온다. 꼭 그런 식상한 발언을 해야겠거든 신선한 다른 발언도 준비하자. 그게 정말 노력하는 프로의 모습 아니겠는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가 되는 요즘, 축구만 잘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축구만 잘하는 선수는 스타고, 축구에 말까지 잘하는 선수가 슈퍼스타다.
예전에 전북의 최강희 감독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매주 경기장을 다녀보면 알거야. K리그가 아직까진 참 열악해. 구단에서 마케팅을 열심히 한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있어>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직접 나서 몸소 마케팅을 보여주시는 훌륭한 분. 혹 그들만의 잔치가 될 지도 모를 경기를 소문난 잔치로 만들어 주는 상당한 센스와 능력을 겸비한 최강희 감독은 전북만이 아니라 K리그 전체의 크나큰 보물일지도 모른다.
팬 서비스면 팬 서비스. 성적이면 성적.
정말 그는 K리그가 자랑할 만한 <난 놈>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성남의 신태용 감독이 이번 미디어데이에 불참했다는 것이다. 지난 해 아시아 클럽 축구를 제패한 후 <난, 난 놈이야>라는 기가 막힌 우승 소감을 남겼던 그가 이번 미디어데이에 참가했더라면 또 다른 이슈 거리를 하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의 속내를 감추며 말을 아끼는 게 덕목이던 시대는 갔다. 때로는 화두를 던질 줄 알아야하고 자기 홍보도 할 줄 알아야 리그가 산다. K리그도 결국엔 하나의 상품 아닌가. 상품이 팔리려면 광고가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관심을 불러 일으킬 발언을 던질 수 있고 그 발언에 맞서 대응할 수 있으며 때로는 깨방정까지 떨 수 있는 센스 있는 감독들과 선수들이 조금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참. 다음 주말에 있을 K리그 개막전 일정에 대해 광고 하나 하자.
3월 5일 오후 3시 : 상주vs인천 (상주 시민)
포항vs성남 (포항스틸야드)
광주vs대구 (광주 월드컵)
강원vs경남 (강릉 종합)
3월 6일 오후 2시 : 서울vs수원 (서울 월드컵)
오후 3시 : 제주vs부산 (제주 월드컵)
전북vs전남 (전주 월드컵)
울산vs대전 (울산 월드컵)
공감하셨다면 클릭해주세요.
'스포츠-축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팍축구장 (0) | 2011.05.02 |
---|---|
[스크랩] 수원vs경남.<경남, 또 한 번 수원 잡고 역대 전적 4연승 달리다> (0) | 2011.04.25 |
[스크랩] ‘2011 K리그 오피셜 가이드’ 와 ‘2011 K리그 연감’ 판매개시 (0) | 2011.04.21 |
[스크랩] 강원팬마저도 감동시킨 성남의 아챔 우승. (0) | 2010.11.15 |
[스크랩] 아챔 결승행 결정 지은 탄천, 그 현장 사진들. (0) | 2010.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