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경기 막판까지 희망을 갖고 가슴 졸이며 경기를 본 것 같다. 두 번째 승리를 거두기 위해선 이번 제주전이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회가 눈 앞에서 날아가 버린 것이 참으로 아쉽다. 어쩔 수 없이 실점한 경우라면 다음에 더 잘해야지라면서 털어버릴 텐데 비슷한 실수에 의한, 그래서 알면서도 실점을 한 것 같아 더 아쉽다.
제 3자가 보기엔 재미있었을 경기다. 0-2에서 2-2, 그리고 막판에 다시 2-4. 하지만 패배와 관련된 당사자들은 마냥 재미있게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식스센스 뺨치는 반전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러하질 못했다.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이젠 이기는 경기를 위한 노력도 하자. 두 골을 뒤진 상황에서도 두 골을 따라가며 팬들에게 희망을 보여준 강원 선수들에 박수를 보내고 지금부터 오늘 경기 내용 자세히 한 번 살펴보자.
김호준
최원권 강준우 강민혁 박진옥
김영후 윤준하
오승범 박현범
델리치 이을용 자크미치 박상진
배기종 산토스 이현호
김은중
이민규 곽광선 오재석 이상돈
유 현
골 : 김은중(전4) 이현호(전26) 이을용(전37) 김영후(전41) 김은중(후35) 산토스(후42)
교체 : 델리치↔정성민(후6) 자크미치↔이우혁(후27) 이을용↔이준형(후37)
박현범↔김영신(후13) 강민혁↔윤원일(후21) 이현호↔강수일(후34)
1. 오늘 경기의 실점 패턴, 반드시 보완해야.
ⓒ GWFC
경기 전에 작성한 프리뷰에서 제주의 PP10C7 (presing-압박, possession-볼 소유를 10초동안 하고 countattack-역습을 7초 내에 마무리 짓는다)을 과소평가한 적이 있는데 오늘 경기를 보면서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기분이 들곤 했다. 특히 C7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오늘 경기에서 나온 실점 패턴, 간단한 기호로 나타내 보자.
김영후 윤준하
델리치 박상진
이민규 ▲ 이상돈
이을용 자크미치
곽광선 오재석
유 현
강원이 위에 ▲ 로 표시한 지점에서 볼을 빼앗겼을 때 제주는 마치 준비된 각본대로 움직이며 침착하게 득점을 해냈다. 특히 전반전에 자주 나온 장면으로 제주는 무리하게 앞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강원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렸는데 이 장면은 제주가 오늘 경기를 얼마나 잘 준비하고 나왔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오늘 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 전체적으로 이러한 실점 패턴이 굉장히 많이 반복된 강원이다. 최전방 공격수와 측면 미드필더가 앞에 배치되어 있고 측면 풀백까지 앞으로 올라와 있는 상황에 중앙 미드필드 진영에서 볼을 돌리다가 끊길 경우 바로 센터백 두 명과 상대 공격수 여러 명이 직접적으로 맞닿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상대가 순간적으로 공격 숫자를 늘리고 이에 대응할 강원 수비수의 숫자가 부족하자 그렇다 할 대응도 해보지 못하고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다.
어느 한 부분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볼을 소유한 선수가 동료 선수에게 제 타이밍에 정확히 패스를 전달해주지 못한 것도 문제고, 패스를 받는 선수가 기다렸다가 패스를 놓친 것도 문제고, 패스를 받는 동료 주위에 상대 선수가 있음을 분명히 전달해주지 못한 것 또한 문제다.
다른 팀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몰라도 제주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잔인하게 강원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강원이 실수를 한 탓도 있겠지만 제주가 강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고려할 부분이다.
2. 과감한 중거리 슛팅, 두드리니까 열리지 않던가.
ⓒ GWFC.
일단 중앙 미드필드 진영에서 상대의 압박을 한 고비만 넘고 나면 그 다음 고비는 그렇게 험난하지 않았다. 아마도 강원이 자신들의 진영으로 넘어왔을 때 무리하게 뭔가를 만드려고 하다가 볼을 빼앗기고 역습을 당하는 패턴을 간파하고 공격 작업을 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를 보기 좋게 역이용한 것이 이을용의 기습적인 중거리 슛팅이었다. 상대 수비가 압박을 강하게 가하지 않자 이을용은 누구나 한 번쯤 중거리 슛팅을 생각해볼 만한 적당한 위치에서 누구나 한 번쯤 슛이라고 외쳐볼 만한 적절한 타이밍에 슛을 쏘았다. 이는 나로호보다 안정된 궤도를 그리며 상대 골키퍼 김호준의 손을 지나 골망에 안착했다.
이외에도 파울 때문에 노골이 선언된 델리치의 슛팅 장면 등 적극적으로 중거리 슛팅을 시도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왔다. 조금만 더 과감히, 열심히 두드린다면 분명히 열릴 것이다. 오늘 경기에서의 중거리 슛팅, 박수 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3. 골대 불운, 오늘은 다행히 없었다.
ⓒ GWFC
그래도 오늘 경기 고무적이었던 점은 그동안 징하게 맞추던 골대 대신 골망을 시원하게 흔들며 올 시즌 정규리그 처음으로 멀티골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뭐에라도 씌인 양 이상하리 만큼 골대를 맞히던 강원이었는데 오늘은 두 골이나 기록했다. 사실 이틀 전에 열린 R리그 경기에서도 골대를 두 번이나 맞추며 패했기에 오늘 경기도 불안했던 게 필자의 속내였다.
만약 다음 경기에 다시 한 번 골대 불운이 이어진다면 이번에는 고사를 지내는 대신 골문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로 세로 10cm씩만 더 늘려야 할 것 같다. 남들은 골대 맞히고도 잘 넣던데... 골대가 강원엔 왜 그리도 야속하게 굴었는지.
시원하게 한 번 열었으니 선수들의 자신감도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나아졌으리라 생각한다. 다음에도 또, 최대한 많이 넣자.
이미 틀린 문제는 돌이킬 수 없다. 후회하고 미련 가져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틀린 문제 다시 틀리지 않는 것이다. 비록 지금 틀렸더라도 다음에 이 문제를 마주했을 땐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풀어 공략하면 된다. 아쉽긴 하지만 희망도 발견한 경기였다. 다음주 광주 원정은 아쉬움이 아닌 기쁨을 남긴 경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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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2 강원vs제주 프리뷰]
: http://blog.naver.com/russ1010/131759690
출처 : K리그 토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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