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리뷰. <서울에 6골이나 내주며 완패한 강원, 졌지만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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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상대팀이긴 해도 몰리나는 정말 대단했다.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접근성이 가장 좋은 서울 홈 경기였는지라 기자들이 많이 몰릴 수밖에 없을 터였고 그 속에서 몰리나는 전례 없는 맹활약을 했다. 너도 나도 몰리나를 찬양하는 가운데 이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패배 팀 강원의 입장에서 오늘 경기를 바라볼까 한다.
어려운 경기가 될 거라 예상했고 실제로도 경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5-0의 상황까지, 처참했다. <내가 만약 해트트릭이 필요할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바로 강원>에 어울리는 장면도 나왔다. 울산의 고슬기, 전북의 김동찬에 이어 한 달에 무려 세 명의 상대 선수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더니 이번엔 1+1 행사에 걸맞는 선물까지 선사했다. 몰리나가 한 경기 득점-도움 동시 해트트릭이라는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진귀한 기록을 쓰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5골이나 먹었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도 20분이나 남았더라.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윤준하의 벼락 같은 골이 터졌고 이 골을 시작으로 서동현과 김진용의 골까지, 남은 시간 동안 3골이나 넣었다. 오늘 서울전도 여느 패배와 마찬가지로 성적표의 패배 숫자에 1이 더해지겠지만 이만하면 부끄럽지 않은 패배다. 눈물 나는 장렬한 패배였다. 됐다. 이만하면. 잘했다.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훌륭한 패배였다.
유 현
백종환 김진환 곽광선 오재석
몰리나 데 얀
이정운 권순형 박태웅 박상진
최태욱 최현태 하대성 고명진
서동현 김영후
아디 김동우 박용호 현영민
김용대
골 : 몰리나(전9, 후2, 후36) 데얀(전19, 후2) 이승렬(후23)
윤준하(후28) 서동현(후38) 김진용(후45)
교체 : 최태욱↔방승환(HT) 최현태↔이승렬(후17) 현영민↔이정열(후26)
김영후↔윤준하(전47) 이정운↔김진용(HT) 권순형↔이을용(후13)
1. 잊지 말자, 그대들은 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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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에서 5-1이 되었다고 저렇게 기뻐할 수 있을까.
기뻐하는 나르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했다.
강원 진영으로 다가오는 상대 선수가 드리블을 하는 도중 검지를 펼쳐 그쪽으로는 패스를 못 주겠다며 의사 표현을 하는 여유를 부렸다. 아무리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다 해도 인간이라면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보고 있는 나도 분통이 터졌는데 직접 경기장에서 몸을 부대낀 선수들은 오죽했으랴.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열심히 두드렸다. 윤준하는 승리에 도취해 느슨하게 풀려 버린 서울의 심장에 일침을 가했고 서동현은 PK골로 오랜만에 골망을 흔들었다. 이적생 김진용은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회심의 중거리 슛으로 골을 터뜨려 멋진 경기에 일조했다. 5-0에서 6-3까지 만들어줘서 고맙다.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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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넣은 선수들뿐만이 아니다. 김영후는 크로스를 보고 뛰어들어가는 상황에서 골키퍼 김용대와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왼쪽 측면을 넘나들던 오재석은 후반 22분, 근육 경련으로 쓰러졌지만 꿋꿋하게 나머지 시간을 소화해냈다.
승리하라. 만약 비기고 패하려거든 모두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경기를 하라.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우승을, 6강을 바라는 게 아니다. 강원 팬들은 신명 나는 경기를 원한다. 그거면 족하다.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에 포기를 한다고? 그건 내가 속한 동네 축구팀이나 하는 짓이다. 잊지 말자. 그대들은 프로다.
2. 먹지 말아야 할 골은 먹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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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의 크로스가 정확한 것도 아니었다.
강원의 수비수를 맞고 볼이 흐른 뒤에도 수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오늘 경기, 결과적으로 많은 골이 터져 흥미롭긴 했지만 경기의 향방을 결정 지은 전반 9분, 몰리나의 골을 되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직전의 상황에서 서동현이 놓친 일대일 찬스가 아쉽긴 했지만 그보다 아쉬웠던 것은 몰리나에게 내준 골이었다. 페널티 박스 내에 충분한 숫자의 강원 수비들이 있었으며 서로 미루지 않고 먼저 나서서 처리했다면 실점하지 않을 골이었다.
먹지 말아야 할 골을 먹은 경기에서는 항상 큰 점수차로 패한 강원이다. 패한 것뿐만 아니라 페이스 자체를 잃어 평소의 경기력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한 게 태반이다. 8월 한 달 동안 있었던 경기를 봐도 그렇다. 전반 1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각에 골을 내준 전북전은 무려 전반 18분 만에 3골을 내주며 0-3으로 무기력하게 패했고 오늘도 전반 9분에 내준 뒤 10분 후 또 한 골을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했다. 반면 전반전에 실점하지 않은 포항전 같은 경우는 패하긴 했어도 강원만의 페이스로 경기를 이끌어갔다.
먹지 말아야 할 골은 먹지 말자. 그래야 승산이 조금이라도 있다.
3. 공격 전환 템포, 조금만 더 끌어올리자.
ⓒ TBS
서동현, 김영후에게 원샷원킬을 강요할 순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골 찬스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게 시급하다.
앞서 언급한 단락이 경기 결과에 가까운 얘기라면 공격으로 전환하는 템포의 문제는 경기 내용에 대한 지적 정도가 되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준비한 위의 영상을 참고해 살펴보자. 이는 주로 축구장보다 작은 공간인 풋살장에서 공을 찰 때 쉽게 겪는 문젠데 강한 압박으로 대응하는 상대 탓에 앞으로 전진하는 게 쉽지 않다.
오늘 강원이 공격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필요성이 떨어져 보이는 리턴 패스가 꽤나 많이 나왔다. 바로 전방의 공격진에게 연결할 경우 상대와의 수적 싸움에서 3 : 3, 4 :4 정도의 경합이 가능하겠지만 패스가 한 두 번 뒤쪽으로 갔다가 다시 나오면 그 사이에 상대는 수비로 전환해 그만큼 수적 싸움에서 불리해진다. 사실상 팀 동료들이 함께 공격에 가담하는 속도보다 상대 수비들의 수비 전환 속도가 더 빠르다 보니 수적 열세에 처할 것은 뻔한 얘기다. 게다가 부정확하거나 체공 시간이 긴 패스를 할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실제 경기를 지켜보면 그렇다.
리턴 패스가 불필요 할 때엔 주위에 있는 팀 동료들이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해줌으로써 그 빈도를 조금만 줄이자. 뒤로 패스하지 않고 바로 돌아서 앞으로 나아가도 괜찮다며 소리를 질러주자. 또, 패스를 늘 등을 진 상태에서 받으려 하지 말고 사전 동작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쉬운 상태에서 패스를 받자. 또,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 더는 잃을 게 없다. 도전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하자. 오늘 만난 상대팀 서울의 압박이 강했다는 점을 간과할 순 없지만 분명히 틈은 있기 마련이고 개인이 아닌 팀적으로 노력한다면 충분히 더 나은 경기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번 시즌 강원은 빠른 공격 템포를 바탕으로 한 완성도 높은 골보다는 소위 로또에 가깝다는 중거리 슛에 의한 골을 많이 터뜨렸다. 공격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 느려진 공격 템포와 무관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조금 더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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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골을 넣은 서울이 빛난 것은 사실이고 이를 부정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상대팀 강원의 스코어를 확인해봤는가. 23경기에서 터뜨린 골 중 1/3에 해당하는 골 수치를 오늘 서울 원정에서 터뜨렸다. 혹시나 싶어 서울이 봐줬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광주를 상대로 6골을 넣은 뒤 1골만을 내준 채 경기를 마친 전북과 오늘의 서울, 어느 팀이 더 완성도 높은 경기를 한 것일까. 6골을 넣은 것도 서울의 실력이고 3골을 내준 것도 서울의 실력이다.
1승 4무 18패가 강원의 현 성적표고 앞으로 7경기가 남았다. 절망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보자. 난 슈퍼스타 K3에서 툭하면 60초 후에 뵙겠다며 광고를 해도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다른 채널로 돌릴 게 아니라 화장실을 갔다올 시간을 주었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짜증내봐야 달라질 거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여러모로 낫더라.
9, 10월, 남은 경기는 7경기. 긍정의 힘이 강원의 올 시즌 마무리에 깨알 같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2주 후, 상주와의 강릉 홈 경기도 기대해본다. 골망 흔들었을 때의 그 느낌, 고이 모셔놨다 상주전에서 또 한 번 느껴보자.
<졌다. 하지만 잘했다. 오늘은 그대들이 자랑스럽다>
이 한 줄이 오늘 경기에 대한 나의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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