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지친 성남, 강원 원정에서 귀중한 승점 3점을 얻다.
프로 레슬링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최근 무한도전에서 방영한 프로 레슬링 편을 재밌게 시청한 필자와 같은 분이 계시지는 않을까 싶어 꺼내본 애기다. 축구 리뷰에 왠 프로 레슬링 얘기냐. 프로 레슬링에서는 경기를 끝낼 때 심판이 카운트를 세는데 심판이 아무리 카운트를 자주 세더라도 원, 투까지 세서는 끝이 나지 않는다. <쓰리>라는 구호가 나와야 비로소 경기를 끝낼 수 있지, 그 전에는 절대 끝난 게 아니다.
무한도전에 이어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가 생각난다. 김구라가 최근 물의를 빚은 신정환에게 충고를 하는 장면에서 사용했던 문구를 조금 다른 의미에서 인용해볼까 한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두 가지 얘기가 오늘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1. 너무 안일했던 건 아닐까.
전반 9분, 코너킥 상황에서 안성남의 감각적인 패스를 받은 김영후가 볼에 대한 집중력을 보이며 골로 연결지었다. 이후 몇 차례 좋은 기회를 만들어갔으나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다. 오늘 경기가 조금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선수들이 보여준 <안일함>에 있었다. 강원은 최근, 그러니까 8월 이후부터 쭉 좋은 경기를 해왔다. 한 경기 최다 실점이 2실점(울산,서울,수원)에 그쳤고 공격수들이 적기에 골을 넣어주며 승점 사냥에 있어 꽤나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왔다. 지난 부산전 같은 경우엔 상대에게 슛팅을 14개나 내주고 강원은 2개의 슛팅을 하는 데 그쳤지만 1-1로 비기며 원정에서 승점 1점을 따왔다. 이 부분이 오히려 독이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 경기를 직접 뛴 선수가 <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데 관중석에서 보고 이딴 말 하냐>라고 따질 수도 있겠다만, 제주에서 5-0으로 지고 돌아와 홈에서 죽기 살기로 뛰었던 7월 24일 전북전 영상을 되돌려 보길 바란다. 분명 다른 느낌일 것이다. 필자가 썼던 전북전 리뷰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 경기는 잘했던 우리보다 상대가 더 잘해서 역전패했고, 오늘은 우리가 못해서 진 경기라 생각한다. 몇 차례 감탄을 자아낼만한 패스웍을 보여주긴 했어도 전체적인 투지가 조금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90분이 되기도 전에 스스로 경기의 승부를 결정지은 모습이었고 경기 운영엔 날카로움과 독기가 떨어져 보였다.
오늘 만난 성남이 2주동안 4경기를 치른 팀이었기에 망정이지 100% 전력으로 나왔더라면 더 크게 깨질 경기였다. 정말 냉정히 말해 팀의 조직력이나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선 뒤질 수 있어도, 체력이 됐든 정신력이 됐든 적어도 <힘>에서만큼은 우위를 보여줘야만 했다. 또, 최악의 경우 불과 한 달전 김영후의 버저비터 골로 이별했던 대구와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승점 13점으로 최하위를 달리는 대구 바로 윗 단계인 14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남은 6경기 동안 3승을 하는 게 목표라 밝힌 최순호 감독의 말이 현실이 되려면 남은 경기 정말 치열하게 목숨 걸고 치러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자.
필자 또한 반성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아직 2년차이고 전력 보강 차원에서 영입한 선수들이 이제 갓 두 달을 넘겼다. 100점짜리 경기를 할 순 있어도 우리가 100점짜리 경기만 하는 100점짜리 팀은 아니다. 100점에 가까워 보이는 1위 제주, 2위 서울, 그리고 저 바다 건너 리그의 첼시, 바르셀로나가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원도 오늘 졌을 뿐이다. 강원의 능력과 잠재력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닌데, 매 경기 너무 완벽에 가까운 내용을 원한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아직은 단점을 발견하고 그 단점을 고쳐 다음 경기에 장점으로 보여주는 팀의 모습에 열광할 때인데 말이다.
아무튼 오늘 경기는 여러모로 아쉬웠다. 1-0으로 앞서고 있었고 상대는 무조건 이번 원정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야 했고 이런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선택권은 강원이 갖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상대의 숨통을 쥐락펴락하며 경기를 풀어나가야 했는데 그 선택권을 너무 쉽게 상대에게 내준 것 같다. 지난 경기들을 통해 확인했듯 선제골을 내주고도 동점을 만들거나 역전에 성공하는 악은 생겼다. 이는 확실히 보인다. 하지만 진정 강원이 강팀이 되려면 오늘처럼 이기는 상황에서 리드하는 법도 익혀나가야 할 것이다. 더 좋은 강원의 모습, 기대한다.
2. 플랫 3로의 전환, 무엇이 문제였나.
그 동안 정규리그, 컵대회, 연습경기에서 가끔씩 사용했던 플랫 3중 가장 좋지 못한 경기를 했던 것 같다. 이게 다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플랫 4를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 따위를 해보자는 게 아니다. 플랫 4를 유지한다고 해서 더 크게 패하지 말란 법은 없기에 그저 그 상황에서 감독의 선택을 존중해야하고 그걸 지켜본 내 관점에서 무엇이 문제로 보였는지 써보겠다는 것이다.
강원은 전반전이 끝난 후 이창훈을 빼고 김봉겸을 투입시키며 플랫 3로의 전환을 꾀했는데 이는 어찌보면 지난 9월 7일 이란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보여준 플랫 3와 상당히 유사한 모습이었다. 모두가 알만한사실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플랫 3가 근간이 되는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치를 경우 수비시 플랫 5처럼 변화한 상황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 공격에 가담해야 하는 양 윙백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 점에서 이란전에서의 대한민국과 오늘 성남전에서의 강원은 유사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후반 막판으로 갈수록 이상돈의 패스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졌고 공격에 많은 선수가 가담한 상황에서 공격권이 상대에게 넘어가 몇 차례의 역습 위기를 맞았다. 또, 박상진의 경우 공격에 적극 가담하지 못해 왼쪽 측면으로 열어주는 패스를 제 때 받질 못했고 상대가 치고 올라올 공간을 내주었다.
지금까지 강원의 모습을 살펴봤을 때, 국가대표팀으로 따지면 이영표, 최효진 혹은 차두리처럼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면서 수비에 가담해줄 수 있는 선수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확실히 있다>라고 답을 내리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감독과 코칭 스탭이 가장 잘 알고 있을 부분이지만 지켜본 입장에서 결과만을 따져봤을 땐 그렇다. 전술 변화에서 재미를 보려면 조금 더 완성도가 뒤따라야하지 않을까하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시해 본다.
3.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그렇다고 절망 뿐인 경기는 아니었다. 오늘 경기에서 인상적이었던 선수를 꼽자면 골키퍼 김근배와 주장 정경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최근 꾸준히 선발로 나서고 있는 골키퍼 김근배는 안정된 경기 운영과 정확한 골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측면의 빈 공간으로 넣어주는 정확한 골킥은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제대로 했다. 덕분에 공격수들이 조금 더 빠르고 쉽게 상대 진영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좋은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주장 정경호는 점점 더 폼이 오르는 모습이다. 빠른 공격 템포를 살려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선수에게 정확한 패스를 해주었고 측면에서 중앙으로 양질의 크로스를 올려주기도 했다. 다만 공격의 마무리에 있어 정교함이 떨어져 아쉽게도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오늘 강원의 공격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선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가.
선수 개인이 아닌 팀적으로는 꾸준히 득점하고 있다는 점을 꼽아 볼 수 있겠다. 지난 7월 17일 제주전 무득점 이후 꾸준히 골을 넣으며 9경기 14골, 경기당 1.55골을 기록했다. 전반기처럼 한 경기에 5골을 몰아넣는 폭발력의 중요성도 무시할 순 없지만 이렇게 꾸준히 득점에 성공하는 것이 기복없는 경기력이란 측면에선 더 가치있을 것으로 보인다.
4. 최순호 감독 인터뷰.
경기 후 소감
: 양 팀 모두 좋은 기회를 많이 만들었는데 상대가 두 골을 넣었고 우리가 한 골을 넣어 패했다. 우리도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는 상황이 있었고, 우리가 선취 득점을 해 더 달아날 기회가 있었는데 좋은 기회에서 성공하지 못하며 쫓기는 입장이 됐다.
홍 : 후반으로 가면서 수비 라인의 변화가 있었다. 혹시 전반전의 수비 내용이 맘에 안 들었는가. 그 변화의 의도가 뭔지 궁금하다.
최 : 전반전에는 4-4-2 포메이션을 활용했는데 전반전 내내 상대 2명의 공격수가 깊이 들어왔다가 한 명이 미드필더로 내려와 중앙에서 우리가 수적으로 불리함을 겪었다. 그래서 (미드필더에서의 숫자를 늘리고자) 우리는 3백으로 전환을 했다. 오른쪽은 대체로 잘 됐지만 왼쪽에 있는 (박)상진이가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게 아쉽다. 공격적으로 나가 상대를 수비적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오늘의 패배가 더욱 더 강한 강원이 되는 데 쓰디쓴 약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쓰기만 하면 안 된다. 반드시 약이 되어야만 한다.
+ 성남 팬분들 축하드립니다. 6강 진입이 한결 수월해진 거 같네요. 부럽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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