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업로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시려면 트위터 @Hong_Euitaek 를 팔로우해주세요.
ⓒ MBC SPORTS+
ACL 결승전이 열렸던 전주성. 꿈 같았던 순간. 참 행복했다.
지난 열흘 동안 K리그 팬들은 제대로 된 팬심단결을 보여주었다. 많은 팬들이 전북의 축구를 찬양했고 이 팀이 K리그를 대표해 아시아 전역을 휘어잡길 바라는 K리그 팬들의 염원을 여기저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북은 대장정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역시나 상대방은 더럽게 드러누웠고 전북 선수들의 발을 떠난 공은 골대를 4번이나 때리는 불운에 시달렸다. 잘 싸웠는데 아쉬움 한 가득이다. 오늘 경기를 본 소감, 소신껏 담담히 펼쳐보고자 한다.
정성훈
서정진 루이스 에닝요
김상식 정훈
박원재 심우연 손승준 최철순
김민식
골 : 에닝요(전18) 심우연(전29, 자책) 케이타(후15) 이승현(후46)
교체 : 정훈↔김동찬(후5) 루이스↔이동국(후25) 서정진↔이승현(후25)
1. 역시 에닝요, 초반 승부를 가르다.
ⓒ MBC SPORTS+
환상적이었던 골. 에닝요는 정말 대단했다.
약간의 긴장 속에서 시작한 대망의 2011 ACL 결승전. 에닝요와 케이타로 대변되는 양 팀의 공격력은 이른 시각에 승부가 갈렸다. 전반 18분,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에닝요가 오른쪽 구석으로 꽂아 넣은 것이다. 볼의 스피드나 궤적, 높이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골키퍼 입장에서 손 쓰기 힘든 환상적인 프리킥 골이었다. 셋피스에서도 이렇게 득점을 해줄 수 있는 선수가 있다는 것, 아시아 최고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춘 전북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에닝요의 골이 오히려 전북의 정상적인 경기 운영을 방해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선제 득점에 성공한 전북은 경기의 전체적인 호흡을 온전히 장악해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며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후의 경기 장면은 생각했던 것보다 고삐가 조금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2. 심우연 자책골과 함께 급해진 전북.
ⓒ Osen
당신들이 골 넣은 거 아닙니다잉.
10분 뒤, 통한의 자책골이 나왔다. 케이타가 올린 크로스를 쇄도하던 알 사드 공격수와 심우연이 헤딩 경합을 했고 앞으로 전진하던 김민식 사이에서 자책골이 나온 것이다. 높이에서만큼은 확실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수비수와 골키퍼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실점을 한 것이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김민식이 콜을 확실히 해주어야 했고 심우연도 이에 맞게 움직였어야 했는데 무리한 헤딩이 결국엔 전북의 골망을 흔들고 말았다.
자책골 이후 각 라인 사이의 간격은 넓어질 대로 넓어졌다.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이 컸고 뭐가 그리 급했는지 평소 전북다운 안정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이제 1-1 무승부이거늘, 전반 29분까지 0-0이라고 생각해도 되거늘 왜 그리 서둘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자책골을 허용한 후 <닥공>과 <다득점>에 대한 강박증이 이런 식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싶다.
3. 후반 초반, 최강희 감독이 둔 초강수와 추가 실점.
전반을 1-1로 마친 양 팀은 후반전에 돌입했다. 최강희 감독은 후반 5분이라는 다소 이른 시각에 강수, 아니 초강수를 두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정훈을 빼고 조금 더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할 김동찬을 넣은 것인데 이 또한 <닥공>, <다득점>에 대한 강박증 혹은 약간의 욕심은 아니었을까 싶다. 이 교체 이후 알 사드 진영에서 원투 패스를 이용한 공격이 몇 차례 나오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다소 도박적이고 공격적인 교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 마디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모>와 쪽박이 날 수 있는 <도>의 차이가 극명했던 교체였던 셈이다.
ⓒ MBC SPORTS+
중앙 공간이 너무 오래동안 버젓이 노출돼 있었다.
10분 뒤, 실제로 팀의 밸런스 무너지는 모습이 나왔고 이는 케이타에 역전골을 내주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오른쪽 측면에서 서정진의 공격이 끊긴 뒤 빠르게 진행된 알사드의 역습 상황, 플랫 4를 감싸줄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제대로 된 역할 수행을 해내지 못했다. 실점 당시 플랫 4는 박원재-심우연-김상식-손승준으로 구성된 상황이었고 루이스가 내려와 수비에 가담했다. 정훈이 빠지면서 루이스가 홀디 역할을 분담해주길 기대했던 것 같은데 루이스는 적절한 위치 선정에 실패해 그 진영에서 잉여 자원을 남고 말았고 뒤늦게 김동찬이 내려왔지만 이미 케이타의 발을 떠난 볼은 전북의 골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1-1 상황, 승부의 추가 균형을 이뤘던 상황에서 조금 급하게 승부를 걸지 않았나 싶다. 공격이 아무리 강해도 수비가 탄탄하지 않으면 경기에 이길 수 없다. 오죽했으면 공격은 관중을 부르고 수비는 승리를 부른다는 말이 있겠는가. 한 경기에 3골을 넣고도 4골을 실점해 패한 ACL 8강 1차전 세레소전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거늘 또 한 번 이에 당하고 만 전북이다.
4. 후반 25분, 강희대제가 던진 또 하나의 승부수.
후반 25분, 최강희 감독은 벤치에서 잠자고 있던 이동국과 이승현이라는 맹수를 깨워 싸움터로 내보냈다. 경기 내내 시원찮았던 서정진에 끊임없는 신뢰를 보내다가 교체 타이밍을 조금 늦게 갖고 가지 않았나 싶다. 반면 정성훈 대신 루이스를 뺀 것은 예상에서 조금 벗어났는데 정성훈-이동국을 최전방에 배치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노린 최강희 감독의 의중이라고 보고싶다.
ⓒ mk 스포츠
당신 잘못 아니에요. 좋지 못한 몸 상태에도 열심히 뛰었잖아요.
이것 또한 어쩌면 전북엔 모험적이고도 도박적인 교체였다. 이동국이 평소처럼 후방까지 내려와 볼 배급에 힘써주지 못할 컨디션이었다면 중앙에서 볼을 배급해줄 선수는 에닝요에 한정될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스코어에서 앞서 나간 상대가 수비벽을 두껍게 세우고 드러눕는 축구를 할 것이란 건 불 보듯 뻔했고 남은 시간은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교하게 만들기보다는 롱볼을 통해 제공권을 장악한 포스트 플레이를 펼칠 의도로 보였고 실제로 80분이 지나면서부터 이런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5. 누운 자도 벌떡 일어나게 만든 이승현의 동점골.
김동찬의 헤딩 슛이 골 포스트를 맞혔다. 정성훈의 슛팅은 골키퍼의 손을 거쳐 골 포스트를 때렸다. 어떻게 이토록 골운이 없나 싶을 정도였다. 골운도 골운이었건만 선수들의 능력도 평소에 미치지 못했다. 김동찬의 슛팅은 가운데로 몰렸고 때로는 슛팅 타이밍 자체를 놓쳐버렸다. 이동국은 몸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좋지 못했는지 기억에 남는 장면을 거의 연출해내지 못했다.
ⓒ 노컷뉴스
이것이 바로 앓아 눕던 자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이승현의 골이다.
패색이 짙던 후반 46분, 에닝요의 발 끝에서 바로 기적이 일어났으니 팬들은 이 기적에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에닝요의 코너킥은 이승현의 머리에 친절히 배달되었고 이승현은 이를 헤딩골로 연결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이승현 가라사대 <내 친히 고통의 몸부림에 데굴데굴 구르는 알사드 너희들을 뛰게 해주리라>며 기적을 행하시는 순간이었다.
6. 일방적이었던 연장전. 추가 득점엔 실패한 전북.
연장전 30분은 전북의 일방적인 반코트 경기였다. 알 사드는 11명의 선수 모두가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가 수비에 치중하면서 역습을 노렸는데 이 과정에서 전북은 무리하게 공격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상대방 골대까지 가는 길목 길목에 역습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무리한 돌파나 짧은 패스를 많이 주고받기보다는 선이 굵은 축구를 구사하는 것이 조금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빛난 것이 김상식의 패싱 능력이었다. 전북에 기대하고 바라던 바를 김상식이 잘 소화해냈다. 후방으로 내려온 그는 넓은 시야를 이용해 측면으로 정확한 패스를 내주었는데 마치 사비 알론'식'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끝내 전북의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다. 이제는 가슴 떨려 눈 뜨고 보기조차 힘든 승부차기로 돌입하게 됐다.
7. 잔인했던 승부차기, 결국 무릎 꿇다.
ⓒ 조이뉴스24
누굴 탓하랴. 다들 열심히 했다. 박수를 보내주자.
우여곡절 끝에, 천금 같은 동점골로 승부차기에 돌입했지만 뭐랄까 보는 내내 지난 1월 아시안컵 일본전이 오버랩되는 느낌이 었다. 당시 연장 후반 직전 황재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마지막까지 끌고 갔지만 아쉽게도 1, 2, 3번 키커가 모두 실축을 범하며 결국 패하고 말았던 대표팀이었다. 당시 구자철, 이용래, 홍정호라는 대표팀 경험이 다소 부족했던 선수들을 키커로 내세운 것이 아쉬웠는데 오늘도 키커 선정에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팀내 사정, 선수들의 몸 상태, 킥 능력은 최강희 감독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경기 내내 좋지 못했던 김동찬,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떨어져 크로스의 정확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던 박원재를 키커로 내세운 것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키커로 나서는 순간부터 심하게 가슴이 떨렸고 결국엔 예상 적중, 가운데로 몰리는 킥으로 막히고 말았다.
ⓒ 연합뉴스, 스포츠조선
귀신은 정말 뭐하나. 저런 놈 안 잡아가고.
올 한해 동안 품어왔던 꿈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는데 이를 눌러버릴 더 강력한 알라신이 있었나 보다. 신이 있으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젠 알사드의 더러운 침대 축구를 클럽 월드컵 무대에서 전 세계 팬들이 보게 됐다. 아시아를 대표해서 나간 클럽팀이 툭하면 드러누워서 웃음을 흘리는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겠는가.
ⓒ 네이트, 네이버
많은 팬들의 관심 속에서 펼쳐진 결승전. 그래서 더 아쉽다.
수고 많았다. 정말 수고 많았다. K리그의 ACL 3연패, 그리고 전북의 ACL 두 번째 우승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마지막까지 죽어라 뛰면서 명승부를 연출해준 전북 선수들 진심으로 수고 많았다. 그대들이 보여준 닥공 축구는 K리그 팬을 넘어 아시아 축구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매력적인 축구였고 여기에서 우리는 K리그의 장밋빛 미래를 찾을 수 있었다. 패배의 허탈감을 추스르고 이제는 K리그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릴 준비를 하자. 또 한 번 신명 넘치는 공격 축구를 챔피언 결정전 무대에서도 볼 수 있길 기대하며 이만 마친다.
공감하셨다면 클릭해주세요.
⊙ 글 업로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시려면 트위터 @Hong_Euitaek 를 팔로우해주세요.
'스포츠-축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국 축구 유니폼, 어떻게 변화했나? (0) | 2011.11.10 |
---|---|
아프리카 축구팀 2012 유니폼 (0) | 2011.11.09 |
[스크랩] 완산푸마 프로축구단의 눈물 (0) | 2011.10.29 |
백승호 바르셀로나 5년 계약 (0) | 2011.07.07 |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기사 (0) | 2011.05.30 |